역시나 인간은 망각의 동물.

by 괭이눈 posted Nov 02, 200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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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요즘 인간 본성이란 무엇인가를 아주 구체적이고, 실증적으로 체험하고
있습니다. 저번에...꽤나 저번에 제가 정말 어이없는 세계사 선생님 이야기를
무려 연작으로 2편이나 썼을 겁니다. 것도 길게;;

그 일이 있은 후...재시험을 봤죠. 결과는 완전 충격이었어요. 저번에 세계사
선생이 저희 반에 들어와서 이 번에 너네반은 재시험 제일 못 볼 것 같다고 호
언장담은 다 했거든요. 전 그 때 정말 자존심이 상했거든요. 그 사람이 무슨 자
격으로 그런 소리를 한단 말입니까..라고 생각했는데 진짜 그렇게 됐더라구요.

어떻게 세계사 반 평균이 60점이 나옵니까? 국영수도 아니고, 단순 암기과목
인 세계사가. 솔직히 이번 재시험, 사고적인 거 하나도 없었습니다. 그냥 외우
면 기본80점은 맞추는 거 였어요. 솔직히 저희반이 의욕도 좀 없고 공부에 손
뗀 애들이 많아서 원래부터 평균이 좀 안 좋았는데 아무리 그래도 이 정도가
나올 줄은 몰랐어요. 정말 자존심도 없다고 생각했어요. 아래에 깔려 있는
10명이 세계사 점수를 17점, 23점...이렇게 맞았더군요.[담임이 열받아서 이름
은 차마 얘기를 못하고 점수만 말했음.] 저랑 다른 애들은 주관식 점수 부른
줄 알았어요;; 근데 총점수더군요. 더군다나 그 애들, 주관식은 0점. 하나정도
는 써줘야 예의(?)아닌가요. 아예 힌트가 없는 것도 아니고 뭐 나온다고 가르
쳐주기까지 했는데.

가뜩이나 저희 반때문에 재시험 본다고[저희반애들이 가장 세계사에 대해서
많이 따져서 소문이 그 지경까지 갔다죠.] 욕을 얻어 먹는 판국에... 재시험
꼴지를 했으니. 가장 잘나온 반은 역시 세계사가 담임을 맡은 11반;; 평균이
무려 86점. 몇점 차이입니까 이거 도대체. 꼬리표 나온 당일 종례시간에 담임
이 저희 혼내는데 11반 아이들이 지나가면서 복도에 있는 다른 반 애들한테
"너네 그거 아니? 얘네 반이 꼴지했대. 지X은 지들이 다하더니." 이러고 가는
데 정말이지...그 들은 자신들이 어떤 태도를 취해야 하는지를 망각한겁니다.
저희 반 아이들도 너무 괘씸하고 11반도 너무 괘씸하고. 솔직히 말해서 저
재시험 93점 맞았어요. 근데 제 점수가 반에서 3등이예요-_-.

그 일이 있은지 거의 2주 다 되가는데...애들은 세계사 일은 이제 신경도 안 쓰
더군요. 그 선생은 처벌은 커녕 버젓이 들어와서 수업하고 다시 뻔스러운 짓을
하는데. 11반의 이쁜이들은 여론 몰이하면서 저희 반 욕하고 다니는데.

더군다나 오늘은 아이스크림 까지 사줬다고 정말 좋아하더군요. 어쩜 그리들.
원래 그 아이스크림을 사주게 된 경로도 우습습니다. 아주 예전에 세계사 선생
은 부교재 사고 남은 돈으로 뭐 사주겠다고 한 적이 있었거든요. 그 부교재 살때
가 4월달이었는데 지금 벌써 6개월이나 지난거죠. 그러던 어느 날;; 7반 아이들
중 하나가 그 얘기를 꺼낸겁니다. 7반 애 말로는 처음엔 뭔소린지 모르겠다는
식으로 가다가 말한 애가 따지니까[걔가 좀 한 성격;;] 사주기로 결정했다는 군요.
웃겼어요. 알고보니 이 사람도 망각을. 남은 돈은 물론이고 자기 잘못도. 아이스
크림 사주고 싹 닦으려구요.

원래 제 친구랑 같이 매스컴에 불어버릴 계획을 세워놨는데 뭐, 안할랍니다. 하
면 뭐합니까. 다들 그 때만 열내고 다 잊어버릴텐데. 저희학교 아이들처럼요.
그런 한순간의 것이라면 다 집어치울랍니다. TV든 인터넷뉴스든 처음에 나올 때
는 다들 우르르 몰려서 욕이란 욕 다하다가 나중엔 아무도 모를텐데.

어제 주민등록증 발급 할 때 됐다고 통지서가 왔더군요, 저 이대로 어른이 되는
거 좋을까요? 되도 좋은 게 하나도 없을 것 같아요. 그냥 이대로 멈춰버렸으면
싶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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