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4>언제나 그곳에 있었다.
"얘야, 정신좀 차려봐."
눈을 뜨니 엄마가 걱정스런 얼굴로 소녀를 내려다 보고 있었다.
"엄마-"
소녀는 엄마를 와락 끌어 안았다.
하지만 엄마는 언제나 그러했듯이 소녀를 품에서 살며시 밀어 일정의 거리를 두었다.
그리곤 차가운 물을 적신 수건으로 땀 투성이 되어버린 소녀의 이마를 닦으며 물었다.
"무서운 꿈을 꿨나 보구나. 몸이 온통 땀 투성이네..."
"엄마, 어젯밤에...."
보라색 문의 그들에 대해 말하려던 소녀는 문득 엄마와의 약속이 떠올라 머뭇거렸다.
"왜? 어젯밤에 무슨일이라도 있었니?"
소녀가 머뭇거리자 엄마는 소녀를 가볍게 안아 무릅위에 앉히고 품에 안았다.
소녀는 엄마의 행동이 낯설어 움추렸지만 이내 편안해짐을 느꼈다.
"자, 이제 말해봐. 어제 무슨일이 있었지?"
"엄마....어젯밤에 그들이 왔었어요.."
"그들이라니? 누구?"
"보라색 문에 있는 그들이 날 쫒아 왔어요...너무 무서웠어..."
소녀는 어젯밤일이 생각나 눈물이 날것 같아 엄마의 품에 얼굴을 묻었다.
그때 엄마는 소녀를 밀치듯 침대위로 내려놓고 벌떡 일어섰다.
엄마의 얼굴은 차갑게 소녀를 내려다 보았다.
"너. 내가 그 문에 대해 말하지 말랬지?"
"그렇지만....사실인걸요.."
"왜! 왜!! 내말을 안들어!"
엄마는 소녀의 어깨를 힘껏 잡고 앞뒤로 흔들어 댔다.
소녀의 눈에 보이는 엄마의 얼굴은 깨진 유리조각에 비춰진것처럼 무섭고 날카롭게 가슴을 찔러댔다.
"이리나와!"
엄마는 가느다란 나뭇가지같은 소녀의 손목을 우악스럽게 움켜쥐고
복도로 끌고 나가 보라색 문이 있는 곳을 가르키며 흥분된 목소리로 말했다.
"저기 뭐가 보여."
".....엄마...흐흑..."
"울지마! 저기 뭐가 보이냐고!"
소녀의 눈에는 여전히 보라색문이 보였지만 소녀는 말할 수없어 고개를 저었다.
"말해! 어서 말해! 뭐가 보이냔 말이야!"
엄마는 소녀의 머리를 두손으로 잡고 보라색 문쪽을 향해 들었다.
"...아무것도...안보여요...."
보라색 문은 터질듯한 소녀의 심장소리와 함께 더 뚜렷이 보였지만 소녀는 눈을 감은체로 거짓말을 하였다.
엄마는 무너지듯 주저앉아 소리도 못내고 우는 소녀를 끌어 안고 울기 시작하였다.
서럽게 집안을 울리는 엄마의 울음소리에 소녀는 아빠가 돌아가시던 그날이 떠올랐다.
어려서 잘 기억은 나지 않지만 엄마가 지금처럼 서럽게 울었던것을 소녀는 기억한다.
'엄마......"
한참이 지난후 울음을 그친 소녀의 엄마는 다시 따뜻한 얼굴로 소녀를 바라보았다.
소녀의 눈가에 묻은 눈물을 손으로 닦아주며 부드러운 목소리로 말했다.
"아직도 보라색 문이 있다고 생각하니?"
소녀는 고개를 세차게 저었다.
"그래...우리집엔 보라색 문이라는건 없어. 너도 알잖아.
어제 감기때문에 몸이 아파서 헛것이 보이고 그런거야.
그러니까 밥먹고 약먹고 한숨자면 괜찮아 질꺼야. 알았지?"
"네..."
1층으로 내려가는 엄마의 품에서 고개를 들어 뒤를 돌아본 소녀의 눈에
언제나 그곳에 있었던 보라색 문이 보였다.
소녀는 눈물이 흐르는 눈을 질끈 감으며 속으로 말했다.
'엄마, 보라색 문이 보여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