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람들은 우리 형을 복학생이라고 불렀다. 사람들은 옳게 보았다. 우리형은 복학생이었다. 불행히도 사람들은 우리형을 보는 것 중 하나만 옳았다. 그 밖의 것들은 하나도 옳지 않았다. 나는 영식이, 영호, 형, 영희, 그리고 나를 포함한 다섯 학생의 모든 것을 걸고 그들이 옳지 않다는 것을 언제나 말할 수 있다.
나의 '모든 것'이라는 표현에는 '다섯 학생의 제적'이 포함되어 있다. 대학에 간 사람들은 재수를 생각할 필요가 없다. 그러나 우리 다섯 학생은 단 하루라도 대학을 생각해 보지 않은 날이 없다. 하루하루 생활이 지겨웠기 때문이다. 우리의 생활은 수능과 같았다. 우리는 그 수능에서 날마다 7등급만 나왔다. 그런데도 영호는 모든 것을 잘 참았다.
그러나 그날 학교 일 만은 참기 어려웠던 것 같다.
"담탱이가 이걸 가져왔어."
내가 말했다. 영호는 3분단 맨 끝줄에 앉아 컵라면을 빨고 있었다.
"그게 뭔데?"
"요번 모의고사 성적표."
"기어코 왔구나!"
영호가 말했다.
"그러니까 대학을 포기하라는 거지? 우리가 꼭 받아야 할 것 중에 하나가 나온 셈이로군!"
영호는 라면을 그만 빨았다. 나는 영호의 컵라면을 집어 들었다. 멀건 국물에 건더기는 지 혼자 다 건져먹었다. 의리없는시키-_-;;
┌──────────────────────────────────────────────┐
│ 대박 대학 수능 모의고사 성적표 │
│ │
│ 수험번호 597777 동X고등학교 4반 김xx │
│ │
│ 원점수 표준변환점수 등급 전국석차 뷁분율 │
│ 언어 23/100 59/200 7 60214/68542 5.23% │
│ 수리 14/100 64/200 6 39419/47254 8.42% │
│ 외국어 21/100 55/200 7 61215/68541 4.22% │
│ 국사 6/50 14/100 7 28121/29541 4.10% │
│ 윤리 3/50 21/100 7 26412/28750 5.12% │
└──────────────────────────────────────────────┘
영호는 책상에 앉아 말이 없었다. 높은 국기계양봉의 그림자가 주차장 담에서 꺾어지며 좁은 교실을 덮었다. 재학생들이 중앙현관으로 나와 뭐라고 소리치고 있었다. 반장은 그들 사이를 비집고 나와 화장실 쪽으로 걸걸음을 옮겼다. 영호는 내가 국물을 다 마셔버린 사발을 들고 쓰레기통 쪾으로 갔다. 영호는 벽에 기대어 섰다. 그리고 손을 들어 벽을 한번 치고 머리를 한번 쳤다. 나는 교무실로 갔다. 고3의 학생들이 잔뜩 모여들어 점수에 대한 의의를 제기하고 있었다. 선생님은 두셋밖에 안 계셨는데 수십명이 거의 동시에 떠들어대고 있었다. 쓸데없는 짓이었다. 떠든다고 점수가 올라가지는 않았다.
나는 바깥 게시판에 적혀있는 학년 석차를 읽었다. 거기에는 수시모집 절차와 직업을 선택할 경우 갈 수 있는 전문대 학과등이 적혀있었다. 상담실은 시장바닥과 같았다.
학생들과 학생 유치에 열을 올리는 전문대 스카우터가 뒤엉켜 이리몰리고 저리몰리고 했다. 나는 거기서 형과 두 친구들을 만났다. 형은 복도 창문 앞에 서 있었다. 영식이는 내가 방금 물러선 게시판 앞으로 갔다. 영희는 상담실 입구쪽에 부여놓은 대박 포스터를 봤다.
아침 일찍 매점으로 뛰쳐 나갔다가 성적표가 나왔다는 소리를 듣고 돌아온 것이었다.
나는 복학생 형 옆으로 가 형의 책들이 들어있는 가방을 들어매었다. 영식이가 다가오더니 나의 어깨에서 그 가방을 내려 옮겨 매었다. 나는 아주 자연스럽게 그것을 넘겨 주면서 이쪽으로 걸어오는 영희를 보았다. 몇 사람의 스카우터가 자기네 학교에 수시를 쓰라고 하였다. 복학생 형이 단어장을 보고있었다. 단어장에는 몇개의 단어가 있는지 알수 없었다. 형은 우리를 물끄러미 쳐다보더니 자리를 털고 있어났다. "복학생이 간다."고 신입생이 겁도 없이 말했다. (중략)
우리는 한 학급에서 공부했지만 격리된 생활을 했다. 학우들 모두가 격리된 상태에서 공부만 했다. 교사들은 우리의 출석일수와 성적을 하나하나 조사해 기록했다. 그들은 점심시간 50분을 주면서 20분동안 식사하고 남은 30분동안 공을 차라고 했다. 우리 학우들은 넓은 운동장에 나가 죽어라 공만 찼다. 서로 어울리지 못하고 간격을 둔 채 땀만 벌뻘 흘리고 있었다. 우리는 제대로 쉬지도 못하고 공부했다. 물론 우리가 금방 죽어가는 상태는 아니었다. 그러나 진아급식(주: 동X고등학교 위탁 급식업체)의 악조건과 공부 양에 못미치는 성적이 우리의 신경을 팽팽하게 잡아당겼다. 그래서 건강할 나이에 제대로 운동하지 못해 과체중 현상을 나타내었다. 교사들의 이해와 우리의 이해는 늘 상반되었다. 교장은 종종 입시난이라는 말을 사용했다. 그와 학교 부장들은 우리에게 쓰는 여러 형태의 억압을 감추기 위해 입시난이라는 말을 이용하고는 했다. 그렇지 않을 떄는 힘껏 공부한 다음 학교의 명예와 학생들이 누릴 장미빛 미래에 대해 말했다. 그러나 그가 말하는 미래는 우리에게 아무 의미를 주지 못했다. 우리는 미래 대신에 간이 알맞게 된 급식이 우리학교 식단에 오르기를 더 원했다. 변화는 없었다. 나빠질 뿐 이었다. 한 달에 두번 있던 휴일이 한 번으로 줄었다. 아간 자율 학습 시간도 한 시간 더 늘었다. 예체능 특기생 인원도 줄었다. 공부 양은 많아지고, 자습시간은 늘었다. 시험치는 날 학생들은 더욱 말 조심을 했다. 옆에있는 학우의 답안도 믿기 힘들었다. 잘못 나온 점수에 대해 말한 자는 아무도 모르게 밀려갔다. 학교 규모는 반대로 커갔다.
면학실을 조성하고, 체육관을 조성하고, 교사용 노트북을 들여왔다. 교장은 고3이 당면한 위기를 말했다. 학칙을 위반할 경우 정학 내지는 전학을 갈 수 밖에 없다고 말했다. 이것은 우리 학우들이 제일 무서워 하는 말이었다. 교장과 학교내 부장들은 그것을 알고 있었다.(후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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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냥 학교에서 심심해서 썼어요 (하하)
(원문: 난쟁이가 쏘아올린 작은 공 - 보러가기)
나의 '모든 것'이라는 표현에는 '다섯 학생의 제적'이 포함되어 있다. 대학에 간 사람들은 재수를 생각할 필요가 없다. 그러나 우리 다섯 학생은 단 하루라도 대학을 생각해 보지 않은 날이 없다. 하루하루 생활이 지겨웠기 때문이다. 우리의 생활은 수능과 같았다. 우리는 그 수능에서 날마다 7등급만 나왔다. 그런데도 영호는 모든 것을 잘 참았다.
그러나 그날 학교 일 만은 참기 어려웠던 것 같다.
"담탱이가 이걸 가져왔어."
내가 말했다. 영호는 3분단 맨 끝줄에 앉아 컵라면을 빨고 있었다.
"그게 뭔데?"
"요번 모의고사 성적표."
"기어코 왔구나!"
영호가 말했다.
"그러니까 대학을 포기하라는 거지? 우리가 꼭 받아야 할 것 중에 하나가 나온 셈이로군!"
영호는 라면을 그만 빨았다. 나는 영호의 컵라면을 집어 들었다. 멀건 국물에 건더기는 지 혼자 다 건져먹었다. 의리없는시키-_-;;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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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대박 대학 수능 모의고사 성적표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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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수험번호 597777 동X고등학교 4반 김xx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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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원점수 표준변환점수 등급 전국석차 뷁분율 │
│ 언어 23/100 59/200 7 60214/68542 5.23% │
│ 수리 14/100 64/200 6 39419/47254 8.42% │
│ 외국어 21/100 55/200 7 61215/68541 4.22% │
│ 국사 6/50 14/100 7 28121/29541 4.10% │
│ 윤리 3/50 21/100 7 26412/28750 5.12%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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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호는 책상에 앉아 말이 없었다. 높은 국기계양봉의 그림자가 주차장 담에서 꺾어지며 좁은 교실을 덮었다. 재학생들이 중앙현관으로 나와 뭐라고 소리치고 있었다. 반장은 그들 사이를 비집고 나와 화장실 쪽으로 걸걸음을 옮겼다. 영호는 내가 국물을 다 마셔버린 사발을 들고 쓰레기통 쪾으로 갔다. 영호는 벽에 기대어 섰다. 그리고 손을 들어 벽을 한번 치고 머리를 한번 쳤다. 나는 교무실로 갔다. 고3의 학생들이 잔뜩 모여들어 점수에 대한 의의를 제기하고 있었다. 선생님은 두셋밖에 안 계셨는데 수십명이 거의 동시에 떠들어대고 있었다. 쓸데없는 짓이었다. 떠든다고 점수가 올라가지는 않았다.
나는 바깥 게시판에 적혀있는 학년 석차를 읽었다. 거기에는 수시모집 절차와 직업을 선택할 경우 갈 수 있는 전문대 학과등이 적혀있었다. 상담실은 시장바닥과 같았다.
학생들과 학생 유치에 열을 올리는 전문대 스카우터가 뒤엉켜 이리몰리고 저리몰리고 했다. 나는 거기서 형과 두 친구들을 만났다. 형은 복도 창문 앞에 서 있었다. 영식이는 내가 방금 물러선 게시판 앞으로 갔다. 영희는 상담실 입구쪽에 부여놓은 대박 포스터를 봤다.
아침 일찍 매점으로 뛰쳐 나갔다가 성적표가 나왔다는 소리를 듣고 돌아온 것이었다.
나는 복학생 형 옆으로 가 형의 책들이 들어있는 가방을 들어매었다. 영식이가 다가오더니 나의 어깨에서 그 가방을 내려 옮겨 매었다. 나는 아주 자연스럽게 그것을 넘겨 주면서 이쪽으로 걸어오는 영희를 보았다. 몇 사람의 스카우터가 자기네 학교에 수시를 쓰라고 하였다. 복학생 형이 단어장을 보고있었다. 단어장에는 몇개의 단어가 있는지 알수 없었다. 형은 우리를 물끄러미 쳐다보더니 자리를 털고 있어났다. "복학생이 간다."고 신입생이 겁도 없이 말했다. (중략)
우리는 한 학급에서 공부했지만 격리된 생활을 했다. 학우들 모두가 격리된 상태에서 공부만 했다. 교사들은 우리의 출석일수와 성적을 하나하나 조사해 기록했다. 그들은 점심시간 50분을 주면서 20분동안 식사하고 남은 30분동안 공을 차라고 했다. 우리 학우들은 넓은 운동장에 나가 죽어라 공만 찼다. 서로 어울리지 못하고 간격을 둔 채 땀만 벌뻘 흘리고 있었다. 우리는 제대로 쉬지도 못하고 공부했다. 물론 우리가 금방 죽어가는 상태는 아니었다. 그러나 진아급식(주: 동X고등학교 위탁 급식업체)의 악조건과 공부 양에 못미치는 성적이 우리의 신경을 팽팽하게 잡아당겼다. 그래서 건강할 나이에 제대로 운동하지 못해 과체중 현상을 나타내었다. 교사들의 이해와 우리의 이해는 늘 상반되었다. 교장은 종종 입시난이라는 말을 사용했다. 그와 학교 부장들은 우리에게 쓰는 여러 형태의 억압을 감추기 위해 입시난이라는 말을 이용하고는 했다. 그렇지 않을 떄는 힘껏 공부한 다음 학교의 명예와 학생들이 누릴 장미빛 미래에 대해 말했다. 그러나 그가 말하는 미래는 우리에게 아무 의미를 주지 못했다. 우리는 미래 대신에 간이 알맞게 된 급식이 우리학교 식단에 오르기를 더 원했다. 변화는 없었다. 나빠질 뿐 이었다. 한 달에 두번 있던 휴일이 한 번으로 줄었다. 아간 자율 학습 시간도 한 시간 더 늘었다. 예체능 특기생 인원도 줄었다. 공부 양은 많아지고, 자습시간은 늘었다. 시험치는 날 학생들은 더욱 말 조심을 했다. 옆에있는 학우의 답안도 믿기 힘들었다. 잘못 나온 점수에 대해 말한 자는 아무도 모르게 밀려갔다. 학교 규모는 반대로 커갔다.
면학실을 조성하고, 체육관을 조성하고, 교사용 노트북을 들여왔다. 교장은 고3이 당면한 위기를 말했다. 학칙을 위반할 경우 정학 내지는 전학을 갈 수 밖에 없다고 말했다. 이것은 우리 학우들이 제일 무서워 하는 말이었다. 교장과 학교내 부장들은 그것을 알고 있었다.(후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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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냥 학교에서 심심해서 썼어요 (하하)
(원문: 난쟁이가 쏘아올린 작은 공 - 보러가기)
그런데 공감이 가네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