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03.03.03 02:02

# 206 - 하루3

조회 수 1658 추천 수 1 댓글 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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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일이면 정말 길고 할 일 없이 보냈던 겨울방학이 끝나고 새학기가 시작된다. 이번에도 무료무익한 나날을 보낸 나는 매번 개학 직전에 느끼는 털털한 후회감을 맛보며 다음 학기 시간표를 프린팅하고 있었다. 게걸스러운 소리를 내며 종이를 뱉어내는 프린트를 구경하던 중 같은 반 친구 우X이에게 문자가 왔다.

'성대야내일휴강이랜다'(원문그대로)

이로서 하루의 방학이 더 생겼다. 하루의 휴일, 거의 세달에 걸쳐왔던 방학기간에 비춰보면 있으나 없으나 티도 나지않을 기간이다. 그러나 왜인지 저 하루가 나에게는 굉장히 무겁고 중요하게 느껴졌다. 별다른 일도 잡혀있지 않는 그저그런 평범한 하루다. 그러나 나에게 내일 하루는 그렇게 중요했다. 여지껏 쌓아두었던 태만한 날들에대한 죄의식(?)일까. 내일 하루만은 멋지게, 후회없이 얻어가는 날이 되어야 한다고 생각했다. 흘러가듯 삶을 보내버린 한 남자가 시한부인생을 선고받은 후에 느끼는 마지막 결의가 이와 비슷할지.

무엇을 해야할까 생각했다. 공부를 한번 죽어라 해볼까. 요즘은 영어 정도는 기본으로 나와야 먹고 산다면서? 영어공부를 하루종일 해볼까.. 등의 생각묶음들이 몇가지 정도 떠올랐다. 그러나 어느 생각도 위에서 강조한 '충실감'에는 이르지 못할 것 같았다. 무엇보다 공부라는 것이 하루만에 뭔가 얻어지는 그런 성질의 것이 아니지 않은가. 여기 들어오시는 학생분들도 잘 이해하시리라 본다. 어디 하루 공부해서 성적이 오르던가.

아무튼 공부는 아니다. 그럼 뭐가 좋을까. 감동의 영화 한편 볼까 생각했다. 그러나 이것도 뭔가 부족하다. 하루다. 하루. 무엇보다 영화에서 느낄 수 있는 감동은 영화를 본 사람이면 누구나 접할 기회가 있는 것이다. 내일 하루는 스스로에게 충실한 하루이어야 한다. 되도록 나만이 경험할 수 있는 하루가 되고 싶었다.

이렇게 뭐할까 뭐할까 생각하다 자정을 넘었다. 벌써 그 '내일'이 시작됐다. 그러나 정해진 건 아직없다. 뭐 하나 정하면 부족해 보인다. 너무나 게을렀던 것에 대한 반작용, 그것이 오히려 일종의 '완벽주의'가 된 것인가. 생각만 하다보니 머리가 다 아프다. 하암..우선은 좀 자자.

아침이다. 목표의 그 날이다. '완벽하게 보내자~!!!' ..하는 생각이 이어진 것은 것은 오후 1시까지, 결국 오늘도 어제와 다름없는 평범한 날이 될 것이라 생각했다. 반쯤은 자포자기한 심정, 눈빛은 점점 흐려졌다. 가게에서 방으로, 방에서 가게로 휘적휘적거렸다. 방에선 어머니께서 요리를 하고 계신다. 조금 있으면 저녁이구나. 오늘 뭐가 나오나 구경이나 하자는 심정으로, 실은 너무 할 게 없어서 시간을 죽이기 위해 어머니 옆으로 갔다. 어머니께서는 멸치를 손질하고 있었다. 멸치라.. 요리라.. 잠시 생각했다.

"엄마, 오늘 멸치볶음은 제가 할께요."
"갑자기 왜? 너 뭐 사고 싶은 거 있어?"
"아, 저 그런건 아니구요..(제길.. 내 이미지는 이랬군 -_-;;) ..아무튼 제가 할께요!"
"어어.. 알았어. 너 어떻게 하는지도 모르잖아. 우선 멸치 손질하고 그 다음 후라이팬에.."

이렇게 저렇게 들은 메뉴얼대로 했다. 성대님 특제 멸치볶음의 완성이다. 자, 다들 기대들 하시라. 가족들 앞에 당당히 가져갔다. 반응이.. 음.. 표정들이 별로다. 아니, 상당히 안좋다. 분위기 파악에 둔감한 나도 분명히 느낄 수 있었다. 이것은 위기다.. 왜 이런 위기가 찾아왔을까 생각해보며 조용히 한 입 먹어보았다. 아.. 그렇구나. 이해가 된다. 양도 엄청 많이했는데.. 이걸 언제 다 먹을까. 위기다. 위기다.. 그러나 나는 단순히 오늘 하루가 욕만 먹은 하루가 아님을 확신했다. 오늘 그림일기는 가족들에게 멸치볶음을 선사했다로 채워졌다.

하루를 어떻게 보냈느냐 하는 것은 결국 자기가 판단한다. 어떻게 생각하느냐에 따라 오늘 하루는 비싼 멸치만 버린 하루가 되기도, 가족들에게 맛있는 요리를 해주려고 팔을 걷어붙인 하루가 되기도 한다. 결국 매순간순간을 다른 각도로 생각해보고 긍정적으로 깨달을 수 있는 자세야 말로 보람찬 하루를 만들어주는 기본적인 요소인 것이다.

자, 지금쯤 방학을 끝내고 헛되이 나날을 보냈음에 후회하고 있는 먹고대학생들이여, 오늘 하루는 평소에 왼쪽으로 다니던 길을 오른쪽으로 가보자. 하루 정도는 우유대신 두유를 먹자. 하루 정도는 메일대신 손으로 편지를 쓰자.
  • ?
    김창환 2003.03.03 07:58
    오랜만에 보는 파이어의 글이네..!
    나는 오늘부터 방학 시작하는데, 정말 지난 겨울 방학 때 허송세월을 보내서
    이번 방학에는 열심히 공부하려고 해..과연 잘 될지는 모르겠지만 말이야..^^
    정말 하루 하루 의미 있게 보내고 싶다..! 파이어도 의미 있는 하루 하루 보내 !
  • ?
    hyangii~# 2003.03.03 18:07
    그렇죠!! 가끔은 일상과 다른 날을 보내고 싶어요.. 가방을 바꿔 메고, 걸어서 학교에 가보고,, 친구에게 안걸던 전화도 걸어보고 ^^
  • ?
    ㈜접떼기™ 2003.03.04 01:00
    수능 끝나고 이제 다시 학교생활 시작했는데..몇년이 지나간듯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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