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가 초등학교 6학년 때, 내가 속해 있는 학급은 꽤나 분위기가 무시무시했다.
흡사 무림계를 옮겨 놓은 듯, 반 규모치고는 꽤나 많은 분파들이 만들어져 있었다.
물론 분파들은 지존의 위치를 점하기 위해 각종 분규가 일어나고는 했다.
귀여운 초등학생(?) 답게 분규원인은 공기, 딱지 등의 아주 푸근한 소재에서 일어나긴 했지만.
암튼 그 당시의 내 눈으로 보기엔 '귀여운 다툼'이 아니었다.
(아, 얘기와는 별 관계없는 것이지만
당시에 맨날 중학교 다니는 형을 데리고 와서 설치는 애가 하나 있었다.
난 이 중학교 다니는 형이 무서웠다. 난 그 형이 무서운만큼 그 애는 얄미웠다.)
위의 설정대로, 나도 우리 6학년 8반 학우들이 다 그랬듯이
무림에서의 위치를 가지고 있어야 했다.
김철민 파에 낄 것인가.
(앞으로 나오는 몇 이름은 전부 가명이다. 그 녀석이 이걸 볼 일이 있겠냐만 암튼 프라이버시다.)
조강찬 파에 낄 것인가.
아니면 조용히 은거하는 중립세력을 표방할 것인가.
.. 의 선택권이 있었던 것으로 기억한다.
난 어느쪽이었을까?
흠.. 물론 이 학교에서 내 초등학교 일을 꾸며봤자 확인해 볼 녀석도 없을테니
'김철민 파의 넘버 2 였다.' 식으로 호기를 부려보고도 싶지만
에고, 예전 일이니 솔직해 지기로 하자 -_-;;
난 중립세력에 들어가고 싶었지만(못 들어간 이유는 아래 중립세력에 관한 부분을 참고)
실은 곰곰히 생각해보면
'김철민 파와 조강찬 파를 오가면서 실속만 챙기던 박쥐'라는 표현이 더 어울릴 듯 싶다.
뭐 실속이라고 해봤자 아부 뒤에 오는 구타의 모면과 쥐포 조각 정도였다.
부끄럽지만 내가 봐도 난 참 멋이 없다.
암튼 내 얘기는 여기까지, 이제부터가 본문이다.
우리 반에는 전지권이라는 애가 있었다.(아, 전지현과는 아무 관계 없다.)
이 녀석 얼굴은 언제나 화장을 한 것처럼 멍과 반창고가 따라 붙었다.
지권이에게는 파가 없었다.
중립세력도 아니었다.
(여기서 중립세력을 간단히 정의하면 선생님의 비호속에 보호받던 극소수의 아이들을 의미한다.
공부를 아주 잘하거나 부모님이 선생님께 자주 들낙거리는 그런 경우에만 비호를 받을 수 있었다.)
그렇다고 나처럼 적당히 왔다갔다 하지도 않았다.
그래서 지권이는 늘 얼굴에 멍과 반창고로 코디를 했다.
철민이파와 강찬이파 양쪽에서 늘 린치를 당했다.
지권이는 언제나 말했다.
'병X같은 새X들. 니가 무슨 왕초라도 되냐. 놀라면 혼자 놀고 짜증나게 붙잡지 좀 마라.'
..지권이는 언제나 린치를 당했다.
지금 생각해보면 지권이는 혼자라는 점에서 흡사 '시라소니'를 떠올리게 한다.
그러나 지권이와 시라소니 사이에는 엄청난 차이점이 있다.
시라소니는 싸움을 잘 하고 지권이는 싸움을 못한다.
... 난 항상 지권이를 어리석은 녀석이라고 생각했다.
그래, 지권이는 어리석었다.
적당히 어디 붙어있거나 잘 구슬리면 쥐포도 사주는데 왜 그랬을까.
맞는 것을 좋아하는 변태였나.
지권이는 무슨 말을 하고 싶었을까.
지권이는 어리석었을까.
왜 그런지는 몰라도.
내가 맞는 것도 아닌데 지권이가 맞는 것을 보면 뭔가 저려왔다.
양심일까? 심약함일까. 암튼 어디선가 오는 이 저려옴이 비겁한 나의 모습을 이기면서
난 지권이에게 가서 다음에는 적당히 분위기 맞추면서 맞지 말라고 얘기했다.
그리고 쥐포도 나눠줬다.
'쪼잔하게 기어다니라고? 그 새X들 아무것도 아냐. 너도 쫄지 좀 마라.'
그렇게 말하는 지권이는 이상하리만큼 밝게 웃고 있었다.
내가 준 쥐포를 먹었다. 정말 맛있게 먹는 것 같았다.
.. 그 날 이후로 지권이와 난 친구가 되었다.
그 후로도 지권이는 철민이파와 강찬이파 양쪽에서 자주 시비가 붙었다.
그러나 한 가지 달라진 것이 있다면 그 비겁한 내가 철민이와 강찬이에게 아부를 아끼지 않으며
지권이의 멍자국은 점점 옅어져 갔다는 것이다.
지권이는 지금 군대에 가 있다.
가끔 그 녀석 생각이 난다.
녀석, 왜 초등학교 6학년때는 녀석들에게 맞아가면서까지 하고 싶은 말을 다 한걸까.
그렇게 지키고 싶었던 자존심을 벌써 굳혔던 것일까.
하루 이틀 이렇게 삶을 살아가면서 우리는 많은 곳에서 관계를 맺는다.
모든 관계는 사람사이에서 맺어지며 결국 사람은 타인과는 다른 각자의 존재인 만큼
관계를 유지하고 싶다면 그 관계에서 요구하는 규칙을 지켜야 한다.
그 규칙은 자신의 신념과 일치할 때가 많고 그렇기에 대부분의 관계가 그대로 유지된다.
하지만 그 규칙이 자신의 신념과 일치하지 않을 때에는 결정해야 할 일이 생긴다.
적당히 나를 그 규칙에 맞춰 나가면서 관계를 유지할 것인지
아니면 자신의 신념대로 그 규칙에 맞서던지에 관한 결정이다.
난 언제나 전자의 방법을 취하며 스스로를 조금씩 변형시켜 나갔다.
이것이 조용하고 무난하게 살아가는 방법이라고 생각했기 때문이다.
하긴 언제나 뭔가 신념을 지킨다는 것은 멋져보이면서도 한편으론 어리석고 이기적인 것이라고 생각한다.
그러나 이런 '무난하고 안전한' 방법에 스리슬쩍 몸을 맡기는 것이 내면화 되면서
어느세 정말 추구해야 될 것이 무엇인가를 생각하고 또 실천해가는 용기를 잃어간 것이 아닐까.
진정한 나의 모습은 어떤 모습인가.
좀 더 솔직히 나를 들어내며 가슴을 펴고 살아야 하지 않을까.
지금의 지권이는 어떻게 인간관계를 유지시켜 나갈까.
예전이랑 비슷할까. 아니면 말 그대로 어른스러워지고 적당히 넘어가는 법을 배웠을까.
어느것이 정의의 길이다 비겁한 길이다라는 식의 이분논리는 세우고 싶지 않다.
다만 지금 바램은
지권이와 우리 동네의 공원 호수터에 앉아
방금 슈퍼에서 산 가벼운 캔맥주 한 잔이라도 들이키고 싶다는 것이다.
흡사 무림계를 옮겨 놓은 듯, 반 규모치고는 꽤나 많은 분파들이 만들어져 있었다.
물론 분파들은 지존의 위치를 점하기 위해 각종 분규가 일어나고는 했다.
귀여운 초등학생(?) 답게 분규원인은 공기, 딱지 등의 아주 푸근한 소재에서 일어나긴 했지만.
암튼 그 당시의 내 눈으로 보기엔 '귀여운 다툼'이 아니었다.
(아, 얘기와는 별 관계없는 것이지만
당시에 맨날 중학교 다니는 형을 데리고 와서 설치는 애가 하나 있었다.
난 이 중학교 다니는 형이 무서웠다. 난 그 형이 무서운만큼 그 애는 얄미웠다.)
위의 설정대로, 나도 우리 6학년 8반 학우들이 다 그랬듯이
무림에서의 위치를 가지고 있어야 했다.
김철민 파에 낄 것인가.
(앞으로 나오는 몇 이름은 전부 가명이다. 그 녀석이 이걸 볼 일이 있겠냐만 암튼 프라이버시다.)
조강찬 파에 낄 것인가.
아니면 조용히 은거하는 중립세력을 표방할 것인가.
.. 의 선택권이 있었던 것으로 기억한다.
난 어느쪽이었을까?
흠.. 물론 이 학교에서 내 초등학교 일을 꾸며봤자 확인해 볼 녀석도 없을테니
'김철민 파의 넘버 2 였다.' 식으로 호기를 부려보고도 싶지만
에고, 예전 일이니 솔직해 지기로 하자 -_-;;
난 중립세력에 들어가고 싶었지만(못 들어간 이유는 아래 중립세력에 관한 부분을 참고)
실은 곰곰히 생각해보면
'김철민 파와 조강찬 파를 오가면서 실속만 챙기던 박쥐'라는 표현이 더 어울릴 듯 싶다.
뭐 실속이라고 해봤자 아부 뒤에 오는 구타의 모면과 쥐포 조각 정도였다.
부끄럽지만 내가 봐도 난 참 멋이 없다.
암튼 내 얘기는 여기까지, 이제부터가 본문이다.
우리 반에는 전지권이라는 애가 있었다.(아, 전지현과는 아무 관계 없다.)
이 녀석 얼굴은 언제나 화장을 한 것처럼 멍과 반창고가 따라 붙었다.
지권이에게는 파가 없었다.
중립세력도 아니었다.
(여기서 중립세력을 간단히 정의하면 선생님의 비호속에 보호받던 극소수의 아이들을 의미한다.
공부를 아주 잘하거나 부모님이 선생님께 자주 들낙거리는 그런 경우에만 비호를 받을 수 있었다.)
그렇다고 나처럼 적당히 왔다갔다 하지도 않았다.
그래서 지권이는 늘 얼굴에 멍과 반창고로 코디를 했다.
철민이파와 강찬이파 양쪽에서 늘 린치를 당했다.
지권이는 언제나 말했다.
'병X같은 새X들. 니가 무슨 왕초라도 되냐. 놀라면 혼자 놀고 짜증나게 붙잡지 좀 마라.'
..지권이는 언제나 린치를 당했다.
지금 생각해보면 지권이는 혼자라는 점에서 흡사 '시라소니'를 떠올리게 한다.
그러나 지권이와 시라소니 사이에는 엄청난 차이점이 있다.
시라소니는 싸움을 잘 하고 지권이는 싸움을 못한다.
... 난 항상 지권이를 어리석은 녀석이라고 생각했다.
그래, 지권이는 어리석었다.
적당히 어디 붙어있거나 잘 구슬리면 쥐포도 사주는데 왜 그랬을까.
맞는 것을 좋아하는 변태였나.
지권이는 무슨 말을 하고 싶었을까.
지권이는 어리석었을까.
왜 그런지는 몰라도.
내가 맞는 것도 아닌데 지권이가 맞는 것을 보면 뭔가 저려왔다.
양심일까? 심약함일까. 암튼 어디선가 오는 이 저려옴이 비겁한 나의 모습을 이기면서
난 지권이에게 가서 다음에는 적당히 분위기 맞추면서 맞지 말라고 얘기했다.
그리고 쥐포도 나눠줬다.
'쪼잔하게 기어다니라고? 그 새X들 아무것도 아냐. 너도 쫄지 좀 마라.'
그렇게 말하는 지권이는 이상하리만큼 밝게 웃고 있었다.
내가 준 쥐포를 먹었다. 정말 맛있게 먹는 것 같았다.
.. 그 날 이후로 지권이와 난 친구가 되었다.
그 후로도 지권이는 철민이파와 강찬이파 양쪽에서 자주 시비가 붙었다.
그러나 한 가지 달라진 것이 있다면 그 비겁한 내가 철민이와 강찬이에게 아부를 아끼지 않으며
지권이의 멍자국은 점점 옅어져 갔다는 것이다.
지권이는 지금 군대에 가 있다.
가끔 그 녀석 생각이 난다.
녀석, 왜 초등학교 6학년때는 녀석들에게 맞아가면서까지 하고 싶은 말을 다 한걸까.
그렇게 지키고 싶었던 자존심을 벌써 굳혔던 것일까.
하루 이틀 이렇게 삶을 살아가면서 우리는 많은 곳에서 관계를 맺는다.
모든 관계는 사람사이에서 맺어지며 결국 사람은 타인과는 다른 각자의 존재인 만큼
관계를 유지하고 싶다면 그 관계에서 요구하는 규칙을 지켜야 한다.
그 규칙은 자신의 신념과 일치할 때가 많고 그렇기에 대부분의 관계가 그대로 유지된다.
하지만 그 규칙이 자신의 신념과 일치하지 않을 때에는 결정해야 할 일이 생긴다.
적당히 나를 그 규칙에 맞춰 나가면서 관계를 유지할 것인지
아니면 자신의 신념대로 그 규칙에 맞서던지에 관한 결정이다.
난 언제나 전자의 방법을 취하며 스스로를 조금씩 변형시켜 나갔다.
이것이 조용하고 무난하게 살아가는 방법이라고 생각했기 때문이다.
하긴 언제나 뭔가 신념을 지킨다는 것은 멋져보이면서도 한편으론 어리석고 이기적인 것이라고 생각한다.
그러나 이런 '무난하고 안전한' 방법에 스리슬쩍 몸을 맡기는 것이 내면화 되면서
어느세 정말 추구해야 될 것이 무엇인가를 생각하고 또 실천해가는 용기를 잃어간 것이 아닐까.
진정한 나의 모습은 어떤 모습인가.
좀 더 솔직히 나를 들어내며 가슴을 펴고 살아야 하지 않을까.
지금의 지권이는 어떻게 인간관계를 유지시켜 나갈까.
예전이랑 비슷할까. 아니면 말 그대로 어른스러워지고 적당히 넘어가는 법을 배웠을까.
어느것이 정의의 길이다 비겁한 길이다라는 식의 이분논리는 세우고 싶지 않다.
다만 지금 바램은
지권이와 우리 동네의 공원 호수터에 앉아
방금 슈퍼에서 산 가벼운 캔맥주 한 잔이라도 들이키고 싶다는 것이다.
오늘 까지는 내용이 좀 재미없지만 다음부터는 좀 재미있는 것으로 갑니다.
여기 온지 오래되신 분들은 제 낙서에 적응이 되셨겠지만
가끔 오시는 분들은 제가 좀 유치하게 보일 수도 있을 거에요.
너그러이 이해해 주시길 바랍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