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러가지 생각되는게 있어서 잠이 오질 않는군요.
아, 맞다. 미리 말씀드리지만 이번글은 좀 닭살틱하고(일부 유저에게 짜증 효과 추가)
언제나 그랬지만 재미는 없으며 일부 분들에게는 졸음효과를 동반하기 때문에..
'이 녀석 또 시작이다.'
..라고 생각하신 분들은 좌측 위의 뒤로 버튼과 함께 보람된 삶을 꾸려가세요.
일부 분들이 '저 녀석 말은 저렇게 해놓고 지 글 웃기게 봐주길 기대하며 썼겠지.'
..라고 생각하시겠지만 이번것은 실망시켜드리지 않습니다. 진짜 재미없습니다.
그럼 언제나 그랬지만 경어는 생략.
#5 -> 저번에 #5는 없다고 쓴 적이 있기 때문에.. 이만.
#6
가끔이지만 방 구석에 잠시 기대서 이런 생각을 한다.
'난 뭘 하고 있을까.. 잘 하고 있는건가.'
이런 생각이 드는 이유를 명확하게 밝혀내기는 어렵겠지만..
대충 생각해보면 우선 일상의 반복됨의 정신적인 무료가 중첩된 결과라고 할 수 있고..
또는 자신이 아주 무력한 존재임을 인지하기 시작한 때 부터라고 생각해 볼 수 있겠다.
자신이 무력하다는 것은 개인에게는 아주 공포스러운 일이다.
표현이 아주 과장됐지만 정말이다. 생각해보면 공포스럽다.
우선은 무능한 자아는 주위의 변화에 적응할 영향력을 끼칠 힘이 없기 때문에..
항상 불안하다. 어느날 자신의 생활의 기본적인 것조차 제공되지 않는다면.. 하는 공포.
또 무능하다는 것이 개인의 신변에 위협을 가할 수준이 아니더라도..
(예를 들어 할 줄 아는건 없지만 물려받은 유산덕에 먹고 사는데 지장이 없는경우)
사람은 불안함을 느낀다. 점점 사회속의 자신이 사라져간다는 생각.
존재감이 없어진다는 생각. 사회에서 필요하지 않은 사람이 된다는 생각..
생각해보면 진짜 죽는다는 것은 이런것을 말하는 것일지도 모른다.
사람은 죽으면 이름이라도 남는다.. 그 이름이 사라지는 것이다.
이런 공포에서 벗어나기 위해 사람들은 어느정도의 길을 선택한다.
자신을 감싸줄 보루를 준비하는 부류와..
미약한 자신을 인정하고 신과 같은 초월한 존재에 귀의하는 것.
요즈음의 세대와 사회는 전자의 입장을 취할 것을 권장한다.
한마디로 자신의 몸은 자신이 지킨다는 것.
여러가지 능력을 갖춰 일정한 직업경쟁에 뛰어드는 것은 자신의 능력을 믿는것이고..
돈으로 다 쓰지도 못할 정도의 돈을 만드는 것은..
사람들이 그렇게 선망의 대상으로 여기는 '돈'으로 자신의 사회적 입지를 사는 것이라고 할 수 있겠다.
참 일리있는 논리다.
한편 언제부터 느끼게 됐다.
이런 논리속에서의 나는 얼마나 무력한 존재인가.
성대야(필자의 본명). 니가 할 줄 아는게 뭐냐?
뭘 믿고 이렇게 안심하고 살아가냐? 돈이 있냐. 공부를 잘 했냐.
아니면 운동을 잘하냐. 너 뭐하는 녀석이냐... 하는.
이런 생각에서 벗어나고 싶은 생각에 여러가지 방법으로 길을 찾았다.
아니다. 실은 아직도 찾고 있다.
처음엔 '이 놈의 세상이 틀려먹었지.' 하며 위의 사회논리를 부정했었다.
그러나 어느세 그것이 무능한 나에 대한 변명이라는 것을 알게 되었다.
그 다음은 이런 생각이 나올 차레다.
'오냐, 그래. 나도 아주 능력있는 사람이 되면 될 거 아니냐.'
.. 처음의 생각보단 내적인 안정감이 풍부한 느낌이었다.
공부도 열심히 했고 성적도 많이 올랐다. 바라던 대학에 들어올 수 있었다.
(이렇게 적으니 꼭 지금은 필자가 아주 공부를 잘하는 것처럼 적혀있는데.. 천만의 말씀이라고 할 수 있겠다.)
그러나 시간이 점점 지나고 점점 교만해지는,
어리석어지는 자신을 발견하면서.. 반성이 들게 됐다. 지금의 시점이다.
'사는 건 이런게 아니다. 겉치장뿐인 모습으로 혼자가 되는 공포에서 벗어나려고 애쓰는 모습은 추하다.
재산이던, 능력이던 잘 포장된 자신에게 만족하며.. 자기 만족으로 끝나는 사람은 불쌍한 사람이다. 마음이 가득찬 사람이 되보자.'
..라는 생각이 든다.
나중에 몇 년만 지나도..
내가 썼던 이런 낙서를 다시보게 된다면 어떤 느낌이 들지 난 확신할 수 없다.
다만 그 때의 나는 짧은 찰나의 하루와 그 날의 느낌 하나하나를
진정 '생각하며 살았다.' 라고 말할 수 있는 자신으로 남아주기를 기원한다.
아, 맞다. 미리 말씀드리지만 이번글은 좀 닭살틱하고(일부 유저에게 짜증 효과 추가)
언제나 그랬지만 재미는 없으며 일부 분들에게는 졸음효과를 동반하기 때문에..
'이 녀석 또 시작이다.'
..라고 생각하신 분들은 좌측 위의 뒤로 버튼과 함께 보람된 삶을 꾸려가세요.
일부 분들이 '저 녀석 말은 저렇게 해놓고 지 글 웃기게 봐주길 기대하며 썼겠지.'
..라고 생각하시겠지만 이번것은 실망시켜드리지 않습니다. 진짜 재미없습니다.
그럼 언제나 그랬지만 경어는 생략.
#5 -> 저번에 #5는 없다고 쓴 적이 있기 때문에.. 이만.
#6
가끔이지만 방 구석에 잠시 기대서 이런 생각을 한다.
'난 뭘 하고 있을까.. 잘 하고 있는건가.'
이런 생각이 드는 이유를 명확하게 밝혀내기는 어렵겠지만..
대충 생각해보면 우선 일상의 반복됨의 정신적인 무료가 중첩된 결과라고 할 수 있고..
또는 자신이 아주 무력한 존재임을 인지하기 시작한 때 부터라고 생각해 볼 수 있겠다.
자신이 무력하다는 것은 개인에게는 아주 공포스러운 일이다.
표현이 아주 과장됐지만 정말이다. 생각해보면 공포스럽다.
우선은 무능한 자아는 주위의 변화에 적응할 영향력을 끼칠 힘이 없기 때문에..
항상 불안하다. 어느날 자신의 생활의 기본적인 것조차 제공되지 않는다면.. 하는 공포.
또 무능하다는 것이 개인의 신변에 위협을 가할 수준이 아니더라도..
(예를 들어 할 줄 아는건 없지만 물려받은 유산덕에 먹고 사는데 지장이 없는경우)
사람은 불안함을 느낀다. 점점 사회속의 자신이 사라져간다는 생각.
존재감이 없어진다는 생각. 사회에서 필요하지 않은 사람이 된다는 생각..
생각해보면 진짜 죽는다는 것은 이런것을 말하는 것일지도 모른다.
사람은 죽으면 이름이라도 남는다.. 그 이름이 사라지는 것이다.
이런 공포에서 벗어나기 위해 사람들은 어느정도의 길을 선택한다.
자신을 감싸줄 보루를 준비하는 부류와..
미약한 자신을 인정하고 신과 같은 초월한 존재에 귀의하는 것.
요즈음의 세대와 사회는 전자의 입장을 취할 것을 권장한다.
한마디로 자신의 몸은 자신이 지킨다는 것.
여러가지 능력을 갖춰 일정한 직업경쟁에 뛰어드는 것은 자신의 능력을 믿는것이고..
돈으로 다 쓰지도 못할 정도의 돈을 만드는 것은..
사람들이 그렇게 선망의 대상으로 여기는 '돈'으로 자신의 사회적 입지를 사는 것이라고 할 수 있겠다.
참 일리있는 논리다.
한편 언제부터 느끼게 됐다.
이런 논리속에서의 나는 얼마나 무력한 존재인가.
성대야(필자의 본명). 니가 할 줄 아는게 뭐냐?
뭘 믿고 이렇게 안심하고 살아가냐? 돈이 있냐. 공부를 잘 했냐.
아니면 운동을 잘하냐. 너 뭐하는 녀석이냐... 하는.
이런 생각에서 벗어나고 싶은 생각에 여러가지 방법으로 길을 찾았다.
아니다. 실은 아직도 찾고 있다.
처음엔 '이 놈의 세상이 틀려먹었지.' 하며 위의 사회논리를 부정했었다.
그러나 어느세 그것이 무능한 나에 대한 변명이라는 것을 알게 되었다.
그 다음은 이런 생각이 나올 차레다.
'오냐, 그래. 나도 아주 능력있는 사람이 되면 될 거 아니냐.'
.. 처음의 생각보단 내적인 안정감이 풍부한 느낌이었다.
공부도 열심히 했고 성적도 많이 올랐다. 바라던 대학에 들어올 수 있었다.
(이렇게 적으니 꼭 지금은 필자가 아주 공부를 잘하는 것처럼 적혀있는데.. 천만의 말씀이라고 할 수 있겠다.)
그러나 시간이 점점 지나고 점점 교만해지는,
어리석어지는 자신을 발견하면서.. 반성이 들게 됐다. 지금의 시점이다.
'사는 건 이런게 아니다. 겉치장뿐인 모습으로 혼자가 되는 공포에서 벗어나려고 애쓰는 모습은 추하다.
재산이던, 능력이던 잘 포장된 자신에게 만족하며.. 자기 만족으로 끝나는 사람은 불쌍한 사람이다. 마음이 가득찬 사람이 되보자.'
..라는 생각이 든다.
나중에 몇 년만 지나도..
내가 썼던 이런 낙서를 다시보게 된다면 어떤 느낌이 들지 난 확신할 수 없다.
다만 그 때의 나는 짧은 찰나의 하루와 그 날의 느낌 하나하나를
진정 '생각하며 살았다.' 라고 말할 수 있는 자신으로 남아주기를 기원한다.